
고양시 첫 관문인 용머리 마을 창릉동은 용두동과 동산동이 합쳐진 행정동으로, 자연부락과 아파트 주민이 공생하는 도농복합 마을입니다. 창릉은 조선시대 제8대 예종과 그의 비인 안순황후 한씨의 무덤으로, 서오릉 중 가장 오래된 왕릉입니다. 창릉동은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마을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서오릉과 함께 향토문화재인 여성 의병장 밥할머니 석상이 대표적인 문화유산입니다.

창릉동에는 인공폭포와 작은 연못이 있는 밥할머니 공원이 있습니다. 공원 한쪽에는 비석 3개와 목이 없는 석상 하나가 자리 잡고 있는데, 이 석상이 바로 고양시 향토문화재 제46호로 지정된 밥할머니 석상입니다. 목이 없는 이유는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인들이 수치심을 느껴 훼손하여 땅에 묻었다고 전해집니다. 이를 해방 후 뜻있는 이들이 땅에서 찾아내어 창릉 모퉁이 마을에 세웠다가 1993년 삼송동 숫돌고개 중턱의 도화공원으로 옮겼고, 현재는 밥할머니 공원에 모셔져 있습니다.

2024년 10월 10일 오전 11시, 이곳에서 제21회 고양밥할머니 추향제가 열렸습니다. 내빈들과 창릉동 주민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경건하게 진행된 이번 추향제는 고양밥할머니보존위원회의 주관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밥할머니 추향제는 2004년 밥할머니 석상 공원 준공식과 함께 시작되었으며, 2007년에는 초등학교 3학년 교과서에 '노적봉과 밥할머니'라는 동요와 글이 등재되기도 했습니다. 이후 다양한 관련 행사도 함께 진행되고 있습니다.



◎노적봉과 행주치마의 전설, 밥할머니 이야기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일본군이 불과 20일 만에 한양을 함락시켰습니다. 선조 임금은 함경도로 피신하면서 급히 명나라에 지원군을 요청했고, 조·명 연합군은 벽제관 전투에서 크게 패하게 됩니다. 이에 명군은 평양성으로, 조선군은 북한산으로 물러나게 되었지요. 이때 부근에 살고 있던 대부호 문씨 집안의 며느리, 총명한 여장부 해주 오씨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북한산 봉우리를 볏짚으로 감싸 군량미를 쌓은 것처럼 위장하고, 냇물에 석회가루를 풀어 쌀뜨물처럼 보이게 하여 허기진 일본군이 이를 먹고 복통과 설사를 일으키게 해 퇴각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 후 오씨는 인근 부녀자들을 모아 여성 의병대를 조직하고, 행주산성 전투에서는 밥을 짓고 부상병을 돌보며, 앞치마에 돌을 담아 날라 행주대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도탄에 빠진 이웃들에게 가산을 털어 밥과 곡식을 나눠주는 구휼 활동을 펼쳤고, 이로 인해 사람들은 오씨를 '밥할머니'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인조 임금도 밥할머니의 공적을 인정하여 정경부인에 봉하였습니다. 후세에 창릉동 주민들은 밥할머니의 석상을 북한산이 잘 보이는 밥할머니 공원에 세워 그 정신을 기리고 있습니다.

현재 고양밥할머니보존위원회 회장을 맡고 있는 임현철 씨는 전형적인 베이비부머 세대의 대표 주자입니다. 그는 한국표준협회 전무이사로 30년간 근무하고 퇴직 후, 한국온실가스검증협회 회장과 숭실대 겸임교수를 역임하였습니다. 은퇴 후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마음으로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여 성공적으로 정착하였으며, 한국세대공감연구소 대표, 서경대 초빙교수, 고양시 주민참여예산위원회 문화관광분과 위원 등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임현철 회장은 "밥할머니의 밥은 생명이며, 나눔을 뜻합니다. 우리는 그 정신을 이어야 합니다."라고 말하며, 각박해진 요즘 시대에 지혜와 용기로 참여하는 밥할머니의 정신을 실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였습니다.
글|김기섭 사부작 사부작 웹진기자